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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망치는 범죄자, 못 잡는 사법기관…경찰 공조 시스템 절실하다.

10 BILLION RICH 2023. 11. 8. 21:30

유치장에서 숟가락 손잡이를 삼킨 뒤 병원 치료를 받던 중 도주한 김길수 사건과 한 달째 행방을 찾지 못하고 있는 100억 원대 사기범(본보 8일 자 인터넷판) 사건을 통해 도주사범 검거 시스템의 부실이 드러났다. 현행 법체계에서는 잇따르는 도주사범을 검거할 공조시스템이 없는 것으로 확인돼 추적 및 검거에 특화된 경찰로의 통보 체계 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8일 경기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100억 원에 달하는 거액의 투자사기 범행을 저지른 A 씨는 지난해 1월 구속기소 1주일 만에 수원지법 평택지원에 보석을 신청했다. 이에 수원지법 평택지원은 지난해 2월 9일 손목형 전자장치(전자팔찌)를 착용하고, 보호관찰을 받으면서 성실하게 재판에 임할 것을 조건으로 A 씨의 보석을 허가했다. 1년여간 이어진 재판에 출석하던 A 씨는 검찰로부터 10년형을 구형받는 등 구속이 확실시되자 선고공판일인 지난달 6일, 전자장치를 끊고 도주했다. 수원보호관찰소 평택지소가 이를 인지했고, 수원지법 평택지원이 A 씨의 보석 허가를 취소한 뒤 수원지검 평택지청과 공조해 검거에 나선 지 한 달이 지났지만, A 씨의 행방은 묘연하다.

이 같은 상황에도 사법당국은 검거 전문가인 경찰에 공조를 요청하지 않았다. 이러한 풍토는 다른 사건들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김길수 도주 당시에도 교정공무원들은 경찰 신고에 앞서 직원들에게 상황을 전파하고 일대를 수색하라는 메시지를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렇게 1시간이 지난 뒤에야 경찰 신고가 이뤄졌다.

이보다 앞서 지난해 계곡살인으로 전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은해·조현수 사건에서도 같은 양상이 나타났다. 인천지검은 2021년 2월부터 전면 재수사에 돌입해 같은 해 12월 이들을 추가 소환하기 전까지 10개월간 숨겨진 범행 사실을 밝혀냈다. 그러나 2차 조사를 앞두고 이들은 사라졌다. 당시 검찰은 경찰에 어떠한 공조도 요청하지 않고 3개월의 시간을 흘려보냈고, 공개수배 후 일주일이 지난 뒤에야 공조를 요청했다.

이 같은 양상이 반복하는 것을 두고 법조계 안팎에서는 사법당국의 ‘책임 소재 규명’보다 우선할 강력한 시스템이 없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통상 도주사범이 발생했을 때 이 사실이 외부에 알려지면 누군가 책임을 져야 하다 보니 최대한 외부 기관과 공조 없이 내부에서 검거하기 위해 쉬쉬한다는 얘기다.

전문가들은 도주사범 발생 시 즉각적으로 경찰에 통보하는 시스템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경찰은 추적 및 검거 전문인만큼 신속한 검거가 가능하기 때문이다. 앞서 김길수를 검거한 것도 경찰이었고, 4개월의 도주행각을 벌였던 계곡살인 역시 경찰과의 공조 시작 열흘 만에 검거가 이뤄졌다.

오윤성 순천향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도주사범 발생 즉시 경찰에 요청하는 시스템을 강제해야 한다. 도주 사범이 생겼는데 이를 알리지 않는 것은 불이 났을 때 119에 신고하지 않는 것과 같은 비상식적인 일”이라며 “2015년 연쇄성폭행범 김선용이 도주한 뒤 또 성폭행을 저지른 적이 있는 것처럼 2차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도 즉시 경찰과 공조하지 않는 건 이를 은폐하겠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한영선 경기대 경찰행정학과 교수 역시 “인간이 가진 본능으로, 두려움에 도주를 하는 것인데 원천적으로 막을 수 없다면 도주 인지 즉시 공조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라고 제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