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달 28일 경기도 양평의 ㄱ업체 공장. 산 밑에 자리 잡아 ‘탄소’ 걱정은 없을 것 같은 이곳에선 최근 ‘탄소’ 걱정이 생겼다. 반도체 공장이나 병원·식당에 납품하는 클린매트(오염물질 흡착 매트)를 한 달 평균 15만 장을 만드는데, 이전에 해본 적 없는 탄소배출량 측정을 해야 하기 때문이다.
“탄소배출량을 측정하고 있냐고 묻더라고요. 처음엔 무슨 말인지 했어요.” 이 회사 김 아무개 해외영업팀장 말이다. 김 팀장은 지난해 가을 미국의 한 거래업체 담당자와 한 화상 통화 때 느꼈던 당혹감을 털어놨다. 납품가 인하나 품질 이야기가 아니었다. 알이(RE) 100을 이행하기로 했으니 ㄱ사도 지속가능 보고서 작성을 준비하라는 주문이었다. 이 보고서를 작성하려면 탄소배출량 등 환경 관련 지표가 필수다.
ㄱ사는 그해 봄에는 매트 운반차량인 5톤 트럭을 전기차로 바꿀 수 없느냐란 질문을 국내 거래처한테서 받았다. “1톤 전기차 트럭은 있지만 5톤 트럭은 전기차가 국내엔 없거든요. 아직도 이 문제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어요.” 연 매출 100억 원에 직원은 23명밖에 안 되는 기업에는 벅찬 문제다. 이 같은 요구를 맞추지 못하면 국내는 물론 독일·미국 등 국외 기업으로 수출길이 막혀 1983㎡(600평) 규모의 작은 공장을 닫아야 할지도 모른다.
요구는 이뿐만이 아니었다. 석유에서 추출한 플라스틱 원료 성분의 하나인 ‘폴리에틸렌’과 아크릴(점착제용)이 주 성분인 매트에 대해서도 재활용플라스틱 원료 사용을 늘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김 팀장은 고객사의 이런 요구가 부담스럽지만, 전 세계적으로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라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유럽 바이어들은 확고한 원칙이 있어 보였어요. 지난해부터 요구받은 거니, 올해까지는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요. 현재 우리의 고객사가 아니어도 수출하는 기업에게는 언제든 이런 요청이 올 수 있다고 생각해요.”
ㄱ사가 꼽는 경쟁사는 중국의 ㅁ매트사이다. 김 팀장은 넓은 땅, 우수한 재생에너지와 정보통신(IT) 기술 등을 갖춘 중국이 재생에너지 확대에 적극적으로 나선다는 뉴스를 볼 때마다 걱정이 된다고 했다. 중국에 재생에너지 보급이 잘 된다면, 한국 기업들보다 중국 기업이 더 고객사 확보에 유리하지 않을지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ㄱ사는 공장과 창고동 인근 공터 부지에 태양광 발전 시설을 설치하려 컨설팅 지원 사업을 알아보고 있다.
“해외 고객사에서 원자력발전으로 생산한 전력을 인정하는 걸 본 적이 없어요. 지난해에는 도의 기업지원 사업에도 참여했는데 올해는 아직 안 보여요. 정부가 체계적으로 이 문제를 같이 대비해 줬으면 좋겠습니다.”
알이 100이나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생산부터 유통·재활용까지 제품 생애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을 평가하는 게 뼈대인 ‘환경 전 과정 평가’(LCA), 재활용 플라스틱을 일정 비율 이상 사용해야 하는 탈플라스틱 규제 등 ‘녹색 전환 제도’가 지구촌에 속속 등장하고 있다. 전 세계 나라들이 기후위기 대응이라는 명분과 자국 산업 보호라는 산업정책을 융합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새로운 무역 질서의 확산은 수출 중견·중소기업에 ‘녹색 장벽’으로 인식되고 있다. 기후위기 대응에 공감하면서도 녹색 전환 방법이 까마득하고 그 비용도 만만치 않다고 여긴다.

“녹색 전환, 공감하지만 거대한 장벽으로 다가와”
삼성전자 협력사로 반도체 생산에 필요한 특수가스를 공급하는 ㄴ사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이 회사는 두 해 전 삼성전자로부터 ‘스코프 3 기준 탄소배출량’ 측정 결과를 요구받았다. 제품 생산 과정 외에 물류 과정이나 협력사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 감축 계획 등을 담아야 하는 지속가능보고서를 작성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2008년부터 해당 보고서를 작성한 삼성전자가 스코프 3 기준 배출량을 담기 시작한 건 2023년 발간분부터다. ㄴ사 쪽은 “2022년부터 분위기가 달라져 삼성전자에서 직접 교육하고 있다. 월간 보고서를 작성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삼성전자 지속가능보고서 120페이지에 담긴 스코프 3 기준 탄소배출량 항목 중 ‘구매한 제품&서비스’(1만 4596천 톤 CO2-eq)에 ㄴ사 탄소배출량도 포함돼 있다.

'오늘의 핵심 뉴스'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아이오닉 5 N' 고객 감사 이벤트 (18) | 2024.03.05 |
---|---|
포니 6대로 시작된 완성차 수출 48년... (23) | 2024.03.05 |
지방경제 살리는 이동혁신 (30) | 2024.03.05 |
2월 판매량 전년대비 4.3% 감소한 '56만여대' (20) | 2024.03.04 |
현대차, '더 뉴 아이오닉 5' 출시..가격동결 (21) | 2024.03.04 |